[[북한공|북한군]]의 기습으로 악전고투하던 [[대한민국공|한국군]]은 좌전방의 제 1대대장이 전사한지 얼마후에 옹진지구의 주저항선이 돌파되었다. 이에 [[대한민국공|한국군]]은 지체하지 않고 예비군을 투입, 역습에 성공하였으나 우전방부대 또한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. 이렇듯 승세를 이용한 [[북한공|북한군]]은 [[대한민국공|한국군]]이 재편성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양원과 강령을 점령하였다. 이렇게 하여 [[대한민국공|한국군]]의 작전지역은 동서로 양분되고 말았다.
=== [[개성.문산 전투|개성·문산 전투]] ===
개전 직전, [[대한민국공|한국군]]은 [[청단공|청단시]]에서 [[개성|개성시]]와 장단군 장남면 원당리까지 경비하고 있었다. 그리고 [[대한민국공|한국군]]중 제11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수색에 주둔하고 있었다. [[북한공|북한군]]이 포격에 이어 전차부대를 앞세워 전투를 개시하자 [[대한민국공|한국군]]중 제12연대는 초전에 분산되어 개풍군 남단의 한강 최하류에서 강을 건너 김포 반도와 문산리로 철수하였다. 제11연대([[대한민국공|한국군]])는 수색에서 문산으로 나아가, [[임진강공|임진강 방어선]]에서 [[북한공|북한군]]을 만났다. 제13연대([[대한민국공|한국군]])는 파주 파평산에서 북쪽을 향해 방어전을 펼쳤다. 다음날, 제1사단([[북한공|북한군]])의 동쪽에 위치한 제7사단([[대한민국공|한국군]])이 후퇴함으로써 서쪽이 취약해지게 되고, 이틈에 [[북한공|북한군]]의 일제공격에 밀려, 제11연대([[대한민국공|한국군]])는 [[임진강공|임진강 방어선]]에서 물러났다. 또한 제13연대([[대한민국공|한국군]])도 파평산에서 [[북한공|북한군]]에 저항하지 못하고 밀려났다. [[북한공|북한군]] 제6사단은 김포와 서울 양천구까지 진출하였다. [[분류:한국]]
[[분류:북한]]
[[분류:대한민국]]